소니 MDR-CD900ST와 AKG K601




0. 들어가기 전에



이 비교는 대상에 따라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비교에 사용된 제품 중 하나는 스튜디오 레퍼런스에 가까운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레퍼런스 클래스이긴 하지만 하이파이의 범주에 속하는 제품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제품 모두 모니터 용도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점에 착안하여 비교체험기를 작성합니다.

혹 순수한 감상의 용도로 두 모델 중 하나의 구입을 신중히 고려 중이시라면 이 글이 전적으로 작/편곡 및 오디오 작업에 얼마나 적합한가 하는 점 만을 고려하고 있음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 공통점



상이한 외모와는 달리 두 헤드폰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두 제품 모두 차세대 모델이라 불릴 만하고 디지털 환경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있겠는데요.

CD900ST: 5~30,000[Hz]  VS  K601: 12~39,500[Hz]

제원 상 드러나 있는 재생 주파수 대역이 이렇게 넓습니다.

일단 제원에 기대어 판단하자면 초저역에선 CD900ST, 초고역에에선 K601이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겠죠.

허나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영역, 즉 가청 주파수 대역 (20~20,000Hz)을 고려하게 되면 그저 무의미한 수치 놀음에 불과하진 않은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의문은 16Bit, 44,1kHz (환산 22,050Hz)로 대표되는 현재의 표준에선 답을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SACD 및 전문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향상된 해상도까지 왔을 때 비로소 두 제품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게 되지요.

그런데 의외로 막상 헤드폰을 쓰게 되면 과거에 사용해본 AKG K270S, AKG K271S, SONY MDR-7506 등 한 세대 이전의 모델에 비해 톤이 더욱 정교하고 섬세해진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16, 44.1 포맷의 미디어에서 들었을 때입니다.

청감 상으로 섬세하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음분해도가 높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다시 중고역 이상에 해당하는 대역의 해상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스펙이 단지 수치 놀음 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달리 보자면 유닛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기존의 헤드폰보다 표현력에 다소의 여유가 생긴 느낌이랄까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향상된 미디어와 플레이어를 갖고 있다 하여도 그것을 재생할 모니터 장비가 옛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모니터는 요원하다 할 수 있겠죠.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이 두 제품은 최근의 경향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디자인



디자인 만큼 취향이 반영되는 부분도 없겠습니다만 이 부분에선 K601의 승리입니다.

CD900ST는 모태가 된 MDR-7506 모델의 튜닝 과정에서 디자인 적으로 살짝 바뀐 부분이 있습니다. 실버 링과 빨간색 스티커라는 포인트를 추가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좀 더 경쾌하고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들지만 여전히 K601의 럭셔리한 육탄공세에는 역부족입니다. 나란히 두면 CD900ST이 왜소해 보일 지경이니까요.

특히 보고 만졌을 때 K601의 헤어밴드에 사용된 양질의 가죽, 이어패드의 뛰어난 질감이 CD900ST의 그것을 크게 상회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 더 프로페셔널한 디자인인가 하면 CD900ST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겠죠.

심미적인 부분에 소요되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블랙과 메탈의 심플한 룩 안에 본연의 기능을 차분하게 채워넣으려 노력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차이점은 애초에 제품의 타겟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납득이 가는 부분입니다.




3. 착용감



헤드폰이라면 성능 이전에 착용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간혹 반나절 이상 헤드폰 벗는 걸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요.

가뜩이나 밀폐된 상태로 혹사 당하는 귀를 시종일관 불편하게 한대서야 음질이 좋다한들 집중력 유지가 힘들겠죠.

바로 그 점에서 AKG의 헤어밴드 설계는 등급과 가격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모델에서 칭찬할 만합니다.

특이하게 생긴 헤어밴드를 착용하면 외관상으로 화성인이 지구에 불시착했나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모양새가 되지만 그 착용감 만큼은 가장 상향 평준화된 브랜드가 아닐까 합니다.

반면 인상적인 점은 CD900ST가 K601과는 다른 면에서 좋은 착용감을 보여준다는 점인데요.

7506의 헤어밴드에 기본을 둔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착용 시의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장시간 착용 시에도 압박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전체적인 장력이 낮게 잡혀 있습니다.

7506에 비유해보자면 1 인치 작은 허리띠와 딱 맞는 허리띠 정도의 차이랄까요.

K601 및 AKG의 이어패드가 귀 주변을 감싸주는 반면 CD900ST는 귓바퀴에 달라붙지만 심한 압박감이 없습니다. 이어패드의 재질 상 그다지 큰 장력을 쓰지 않아도 자연히 귀와 밀착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엔지니어들이 드디어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는 단순히 착용감에 그치지 않고 저음 모니터링 시 내부 압력의 상승으로 인해 귀가 급격히 피로해진다던지 하는 부담감도 덜어주는 면이 있습니다.

다만 이어패드의 소재에 있어선 K601이 단연 돋보입니다.

개방형 구조의 헤드폰이기 때문에 차음성을 고려하지 않아서인지 이어패드에 직물 소재를 사용했는데, CD900ST 등 대부분의 헤드폰에서 사용되는 가죽 재질보다 밀착되는 맛은 없지만 그 만큼 쾌적하여 땀의 계절 여름을 나기에 아주 그만입니다.

이 점은 K601이 여타의 다른 AKG 헤드폰들과 차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되면 더욱 후한 점수를 주게 될 것 같네요.




4. 음색



CD900ST와 K601의 음색은 큰 틀 안에서 보면 비슷한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둘 모두 레퍼런스를 지향하고 있어서인지 특정 영역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모니터하기 힘들다거나 특정한 장르의 음악에서 탁월하고 다른 음악에선 취약한 면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는 역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장르에서 심심한 사운드를 낸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 점이 오히려 모니터 헤드폰으로 적합한 이유가 됩니다.

두 제품 모두 높은 해상도를 증명하듯 출력해내는 정보의 양이 많지만 특별히 어느 음색이 독특하거나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둘을 상대적으로 비교했을 때는 특성 상의 차이가 보이는데요.

레퍼런스에 걸맞는 특성을 유지한 채 한 쪽은 정확한 모니터, 다른 한 쪽은 즐거움을 주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저음 특성입니다.

정확도와 양의 면에서는 CD900ST의 승리입니다.

제원이 말해주듯 일반적인 헤드폰보다 초저역의 재생이 유연한 편인데, 일례로 저음군의 악기라고 할 수 있는 드럼의 킥, 베이스가 싱크된 연주를 모니터했을 때 두 음색이 뭉쳐 들리는 경향이 덜합니다.

아무래도 넓은 대역을 커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닛이다 보니 같은 소스라도 좀 더 섬세하게 분해하여 출력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반면 K601은 전체적인 양감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초저역이 커팅된 말끔한 면을 보여줍니다.

가령 드럼의 킥이나 하드한 베이스 톤을 들었을 때 K601 쪽이 좀 더 깨끗한 펀칭감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K601에서 타이트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것 처럼 들렸는데 CD900ST로 오면 양감이 늘어나는 반면 질감이 상대적으로 탁하고 퍽퍽하게 들리는 소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초저역의 재생에서 우위를 갖는 CD900ST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중역 특성입니다.

저는 레퍼런스, 특히 중역에 대해 얘기할 때 우퍼 하나의 싱글 유닛으로 설계된 풀레인지 스피커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크로스오버나 네트워크 그리고 여러 개의 유닛을 조합한 스피커에 비해 음 분해도나 재생 대역은 상대적으로 초라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중역을 낸다는 점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중역을 압도적으로 대표하는 소스인 보컬 만큼은 풀레인지 유닛을 통해 듣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더군요.

하지만 취향에 따라 스튜디오 프로세스를 통해 만들어진 인위적이지만 섬세하고 고역이 잘 살아 있는 톤을 더 좋아할 수도 있을 겁니다.

CD900ST와 K601의 중역 특성은 조금 과장하자면 앞서 얘기한 두 가지로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CD900ST에서의 보컬이 평범하고 자연스럽다면 K601에선 산뜻하고 예쁜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고음 특성입니다.

TR-909 킷의 하이햇 처럼 고역이 플랫하고 순수하게 표현된 톤을 듣고 있으면 CD900ST는 밋밋하게, K601은 밝고 화사하게 표현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K601의 이런 성향은 일종의 착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왜곡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해상도가 매우 뛰어난 면이 있어 모니터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초고역의 표현은 K601이 우위를 갖는다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5. 음상 및 정위



두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개방형의 장점을 마음껏 뽐내듯 이 부분에선 K601이 전적으로 압도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쭉 밀폐형만 써온 저로선 K601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게 헤드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좌우로 넓게 펼쳐진 음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헤드폰으로 톤 선택 및 작/편곡 작업까지 진행하고 스피커를 통해 최종적으로 음상이나 정위를 손보게 되는데 이 정도라면 어느 선까지는 믹스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넓습니다.

또한 리버브가 더 잘 들리고 모니터하기도 편합니다.

반면 CD900ST는 태생적으로 밀폐형인 탓에 K601에 비해 협소하고 그 공간 만큼 정위감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제껏 사용해온 밀폐형 제품들만 놓고 보자면 비슷하거나 좀 더 좋은 수준이지만 역시 믿고 믹스하는 건 무리입니다.




6. 마무리



K601을 먼저 구입해서 사용하다가 나중에 CD900ST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CD900ST는 오로지 일본 자국 내에서만 판매되는 프로페셔널 대상의 특수한 제품이기 때문에 구입 시 꽤 번거로울 수 있었지만 마침 일본에서 공부 중인 지인의 손을 빌려 좋은 조건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안 쓰는 장비를 소장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해서 CD900ST를 테스트해본 후 둘 중 어느 하나를 처분할 계획이었는데 이게 참 어렵게 되어버렸네요.

둘 모두 만족스럽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가격대비성능이나 차음성 등을 생각하면 밀폐형인 CD900ST 쪽이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 보이긴 하네요.

..

여담으로, 미국의 팝 정책이나 일본의 뮤지션 지원을 보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CD900ST의 예가 그러하듯 국익을 위해 시대상에 어울리지도 않는 폐쇄 정책까지 고수하는 그들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이나 악기상들의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태도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문화 강국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나 외칠 게 아니라 음악 산업에 대한 지원이 좀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그것도 힘들다면 최소한 양심적이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우좌당간, 더운데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 본 글은 게시 이후 질적 향상을 위해 정보의 추가나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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